2009년 2월 20일 금요일

꿈 속에 보이던 길에 가보다.

외갓집에서 하룻밤 자고 왔다.

중학교 정도까지는 외갓집에 자주 갔었는데 참 좋았다.

외갓집은 어머니가 태어났을 때 그대로 거기에 아직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살고 게신다.

시골이라서 냇가도 있고 논밭, 야산, 앞산, 뒷산, 저수지 과수원 비닐하우스 가축들 야생짐승들 없는 게 없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바껴서 냇물이 흐려서 고기가 없고 노인들만 살고 있다.

꼬마였을 때는 외가집 근처에서만 놀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멀리 가서 놀았는데 그 놀이터 중에서 유독 꿈에 끝을 알 수 없는 길로 등장하던 길이 있었다.

꿈에 보이던 길은 좀 넓은 논두렁 길이고 길을 따라 가다보면 온갖것들이 나왔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길 끝은 여러가지 다른 세계와 통해있었다.

어제 내리는 눈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 길 끝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눈속에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봤더니 앞으로 가는 길이 끝나고 양옆으로 길이 나 있었다.

어찌나 평범했던지.

그래도 돌아오는 길은 심심하지 않았다.

금굴에도 가보려고 했는데 일찍 자는 바람에 못가봤다.

일본침략기에 일본 사람들이 금을 캐던 굴이 금굴인데 일본 사람들이 가고 나서는 그냥 버려져 있던 굴을 동내 형들이 구경시켜준 굴이다.

동내 또래들 중에도 굴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다 같이 들어가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너무 어두워서 나보고 우리 외갓집에만 있던 손전등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잊어먹고 안 가져가는 바람에 근처에 있던 짚단에 성냥불을 붙여서 들고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갈 때는 좋았다. 굴 끝에는 웅덩이가 있었는데 동내형들 말로는 바다로 통한다고 했다.

그런데 굴 끝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바람에 연기가 굴 가득 차버려서 연기를 들여마셨을 때는 이미 천정부터 가슴까지 연기가 차 있었다.

그래서 그 때 모두 불을 끄고 반사적으로 엎드리라고 소리치면서 머리를 숙이고 입구를 향해서 달음박질을 쳤다.

어두웠고 발밑에는 돌부리가 많았고 연기로 숨은 차왔지만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뛰었다.

그 때 다행이 죽지 않고 나올 수 있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거다.

그 때 못나왔으면 지역신문에 나왔을 지도 모른다.

그런 금굴에는 못가봐서 지금은 어떤지, 그때 느낌하고는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요즘은 꿈에 그 길이 나오지는 않지만 어린시절 황당무계한 꿈을 꿀 적에는 내방 책상밑을 파면 나오던 동전만큼 유쾌한 상상을 많이 하게 해주었던 길이었다.

그 꿈들이 이미 다 사라져버려서인지 그 일로 별로 실망스럽지는 않았고 그 길을 따라가보려고 마음먹었다는 것부터가 꿈을 잃어버렸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꿈은 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고 앞으로 펼쳐질 모든 것들을 꿈꾸며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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